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2013년 3월 27일

   

 

    오늘 본문이 바로 예수님을 석방하기 위해서 행했던 빌라도의 시도에 대한 대답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논거를 듣고 싶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뜻만 관철시키고자 한다"는 엄격하게 타협할 용의가 없는 한가지 요구만 했다.
    한 주 전에만 해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환호하면서 "호산나"라고 외쳤다. "호산나!"에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는 사람들의 의견 바꾸기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들은 얼마나 빨리 다른 사람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는가?! 우리가 한번 결심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논증을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듣는지?! 우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우리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예수님의 유죄 판결은 우리에게 각종 갈등 상황 속에서 우리 자신들의 자세도 또한 조심하게 만든다. 이 판결은 우리에게 판결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논증을 인정해 주거나 진지하게 검토하며 경청할 것을 권면하고자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소리 지르는 대신에 "주 예수여! 우리에게도 오시옵소서!"라고 간구할 수 있도록 우리들을 도와주실 수 있을 것이다.

    인디언 속담에 "너희가 남의 모카신 (사슴 가죽 구두)을 신고서 달에 가기 전에는 결코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우선 자신을 되돌아보며, 늘 이웃의 입장은 물론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인디언 속담에서처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게 되면 상징적으로 하루 동안 다른 사람의 신발을 착용해야 하고 마치 상대방이 된 것처럼 그렇게 모든 것을 행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보면,  마침내 상대방 사람의 입장과 고통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사순절에 국내에서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원세훈 국정원장의 국내정치 개입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이 속담과 똑같을 것입니다. 18 대 대선 기간 중에 "
국정원녀 댓글사건"이 일어났을 때, 새누리당은 "문재인 파렴치한, 사과하라!"고 요구했고, 박근혜 후보는 "성폭행범 수법"이라고까지 이 사건 자체를 부인하고 그것을 문재인 후보는 물론이고 범죄 행위를 신고한 야당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자 했습니다. 즉, 국민들에게 "문재인 후보와 야당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죽을 힘을 다해 거짓 선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애써 모르는 척하며 쥐죽은 듯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만약 쥐라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 모르는 일"이라고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닭이라면, 교회 지붕에 올라가서라도 "원세훈 국정원장이 혼자서 저지른 일이다"고 외치고 싶을 것입니다. 아무런 죄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 형벌을 감당하게 한, 우리들의 잘못된 심판을 피하기 위해 예수님의 고난과 이웃의 고난을 생각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눅 23, 13 - 25   사 26, 20 - 21   (지난 묵상 링크)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눅 23, 21)

   

 

배경 찬송은 "Ich stehe hier an deinem Kreuz"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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