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미지의 자유와 평화

 

2013년 3월 15일

   

 

    마냥 기쁨이 터져 나올 좋은 소식이 있지만, 당황케 하는 좋은 소식도 있다. 이 소식은 모든 익숙한 것들을 뒤죽박죽되게 만든다. 예수님이 이 소년에게 행하시는 기적을 대하는 증인들에게도 이렇게 된다.
    이들의 사실 인식은 더 이상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이들은 아이가 경련을 일으키는 일에 익숙했었고, 또한 각종 의사들도 이 질병 앞에 굴복한 사실에도 익숙했었다. 예수님 제자들이 실패하는 것이 그들에게 결코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의 체험을 반전시키신다. 소년은 치유되었고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이에 제자들은 너무나도 놀랐었다.

    여인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던 부활절 아침에도 또한 그러했었다. 여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었던 생명의 승리에 대해 너무나 놀랐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기대를 여러 번에 걸쳐 반전시키셨다. 왜냐하면, 부활절로 나아가는 여정이 승리의 여정이 아니라, 고난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 놀라는 제자들을 보면서, 가정과 국가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집에서 부모들이 싸움을 매일 밥을 먹듯이 하는 가정의 자식들은 소리 지르고 야단맞는 일에 익숙해 있습니다. 술 취한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과 욕설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어떻게 이것으로부터 몸을 숨기거나 피하는 법을 잘 알고 있고 이것도 불가능하면 역습하는 일까지도 숙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와 국민들과의 관계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국민을 보호하고 보살펴야 할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중요시하기보다는 알권리를 빼앗고 법을 권력의 시녀화한다면, 국민들은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아래서 자라는 자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와 화평이 주어져도, 이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과거 억눌린 시대를 "잃어버린 10년"이란 단어를 통해 동일시 하거나 동경하며, 획득하여 주어진 자유를 누리는 일에 익숙치 못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폭력을 체험한 자녀나 국민들이 '폭력이 전혀 없는 삶에 적응하는 일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말해주는 것입니다. 일상의 영역 뒤에 놓인 화평을 바라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눅 9, 37 - 45    벧후 1, 2 - 11   (지난 묵상 링크)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눅 9, 43)

   

 

배경 찬송은 "하늘 빛 너의 향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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