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자체로도

 

2013년 3월 21일

   

 

    어떻게 "예수"의 이름이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압할 능력을 주고 귀신들과 악한 권력들로부터 사람들이 단숨에 자유롭게 되는 일을 그들이 체험했을 때, 제자들을 사로잡았던 것이 바로 권력에 대한 만족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 이름의 권능에 대한 만족, 이것이야말로 진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예수님은 이 생각을 바로 잡으신다. 인간이 자유롭게 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것도 일시적이고 덧없는 것이다. 삶과 생명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삶이 어떻게 계속되며 어디로 나아가는지가 실제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즉, 우리 삶의 영원한 목표가 달려있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현세의 해방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자유가 결정적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는 각종 구속과 감옥을 가진 이 세계를 극복한다. 하지만,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다스리시는지?!', '어느 곳에 기쁨이, 그것도 하늘의 기쁨과 영원한 기쁨이 넘쳐나는지?'를 쉽게 파악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떠들썩한" 간증을 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게 됩니다. 특별한 은사를 받아 귀신을 쫓거나 불치병을 고친 목사나 부흥강사는 물론이고, 스스로 병나음을 얻거나 세상적 제물의 축복을 받은 이야기들이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분명하게 깊은 감명을 주는 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앙 여정에서 단지 시작의 처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종 축복이나 은사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현세에서 계속 누리고 지키기 위해 결국은 유혹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대표적인 예가 공동체에 모인 헌금을 '친아들과 주식을 사고파는 배임 행위'를 하거나, 가능하면 친아들에게 교회를 통째로 세습시키고자 하는 각종 행위들일 것입니다. 또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란 식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소재인 대학에서 타인의 논문을 표절한 박사학위로 자신을 "박사 목사로 거짓 치장"하는 기쁨까지 누리고자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자체로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눅 10, 17 - 24   욥 1, 1 - 22   (지난 묵상 링크)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눅 10, 20)

   

 

배경 찬송은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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