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예수님은

 

2013년 3월 9일

   

 

    스스로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 "지금 나를 웃으며 바라보거나 나를 비웃고 있는거냐?"고 묻게 된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야이로의 죽은 딸을 더 이상 살리실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회당장 집 가까이 도착했을 때, 이미 먼발치에서 죽음을 슬퍼하는 통곡을 들으실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울지 말아라!"고 말씀하신다. 이때 이것을 결국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53절)는 것을 뜻한다. 즉, 예수님은 비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죽은 것은 죽은 것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추측하건데 학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의사인 누가복음 저자는 집중적으로 조사했었고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54절 이하) 이라고 경탄하면서 기술하고 있다. 비웃음은 멈춰지고 경탄이 커지게 된다. 상이한 형상들 속에 이것은 텍스트의 맥락에서 "예수님은 하지만" 내지는 "하지만 예수님은"을 의미하고 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문제거리, 즉 죽음에 대해서도 문제거리가 되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슬퍼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더불어 울게 됩니다. 하지만, 바울이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딤후 1, 10) 라고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절 승리에 대해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웃는 자들과 함께 웃으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면서도, 이웃을 결코 비웃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눅 8, 40 - 56    눅 6, 43 - 49   (지난 묵상 링크)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눅 8, 53)

   

 

배경 찬송은 "Wie sollte ich nicht glaube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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