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로 분열하는

 

2013년 10월 24일

     

 

    그리스도인들끼리 무엇에 대한 통일성이 있어야만 하고 상이한 의견에도 무엇에 대해 위로를 받아도 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종교개혁은 "구원에 이르는 필연적인 일들"과 소위 "부차적인 일 Adiaphora"  사이에서 현명한 식별에 이르렀다.
    이것은 초대 교회가 "다양성에 있어서 통일성" 문제를 획기적으로 확인했던 사도행전 15장에서 언급되는 사도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의의 결과가 "그리스도인들의 통일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란 사실이다.

    그 이외에도 이미 구약성서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더불어 사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심적인 의미를 지녔던 사실을  친절하게 기억하도록 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다른 영적인 질문들에 대해 어쩌면 아주 격렬하게 자주 다투어야 하거나 다투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통일과 조화의 띠는 이것을 통해 결코 위태롭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 본문은 먼저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믿고자 하는 이방인들, 즉 불신자들에게 '본질적인 것'보다는 '부차적인 것'으로 인해서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구원에 이르기 위해 필연적인 일만'을 중요시하며 십자가의 복음 아래 하나로 되었던 그리스도인들이 수천개의 교파로 산산이 나뉘어 지고 서로 각자들의 교리를 내세워 분쟁과 분열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뜻에 부합될지 자문해 보게 됩니다. 자신들이 속한 모임, 교회, 교파나 종파를 위한 그야말로 부차적인 일들로써, 스스로 복음에 걸림돌이 되고자 온갖 힘을 다하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자 현주소임을 고백해 봅니다. "오로지 믿음으로" 이외는 모든 것을 "아디아포라", 즉 배설물로 여길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행 15, 13 - 35  창 35, 1 - 15  (지난 묵상 링크)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행 15, 19)

   

 

배경 찬송은 "부서져야 하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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