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함정 속으로

 

2013년 10월 27일

     

 

    루터 성경에서 시편 7편의 제목은 "죄없이 박해받은 자의 기도"이다.. 우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만, 또한 시편 기자의 자의식을 혼돈시킨다. 도대체 '우리들이 실제로 어떤 갈등에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이 항상 확실할까? 시편 7편에서는 '다윗이 쫓기고 위협을 받는다'는 상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윗은 도망 중에 있고, "원수가 웅덩이를 팠다" (15절)는 현실이 눈 앞에 닥친다. 이 말은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전 10, 8)는 말씀을 기억하게 한다. 각종 악한 의도, 저의와 부정적인 계획들을  초래하는 일들에 마주치게 된다.

    시편 7편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깊은 신뢰의 표현은 이러하다. 하지만, 서술된 박해 상황은 또한 '비슷한 방법으로 행하지 말라'는 우리들에게 하는 경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맞서는 행동과 술책들은 또한 쉽게 우리들 자신 스스로에게 맞서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우리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게 된다.

    오늘 시편 말씀과 함께 가룟 유다나 이와 유사한 행위들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처음에 유다는 열광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공공연하게 하나님에 의해 예언되었던 메시아였습니다. 예수님의 기적, 권능적인 행하심, 힘 있는 말씀들은 매 순간마다 신성을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메시아 예수는 다윗왕의 전성기를 다시 가져올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만 했습니다.
    유다는 비밀리에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만났습니다. 삼십 데나리온에 그는 아주 빠르게 거래 계약을 끝냈습니다. 예수님이 몸소 사명을 성취하기를 원하지 않으면, 성취하도록 강요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르게 배신의 입맞춤, 떨림, 죽음에 대한 불안, 도망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위해 판 구덩이는 단지 고난을 받는 메시아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을 도왔을 뿐입니다. 가룟 유다는 이렇게 인류 역사에 제일 비참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것을 한국 정치상황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검찰 조사와 재판에서 드러나듯이, 국가기관의 엄연한 법 위반을 토대로 당시 대선 출마자였던 문재인 의원이 "불공정한 대선이었다"는 성명에 "대선불복"이라는 말로 스스로 함정을 파고 빠져드는 어리석은 무리들을 보게 됩니다. 남을 위해 함정을 파는 어리석음을 극복할 수 있는 복된 주일이 되시길.....
....  샬~~~롬

     시 7  고전 1, 18 - 25  (지난 묵상 링크)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시 7, 15)

   

 

배경 찬송은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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