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보다도 더 강한

 

2013년 10월 21일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치유했고 이어서 그에게 마치 하나님께처럼 제물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을 각종 수고로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울의 수많은 대적자들은 인근 지역에서 루스드라로 몰려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 맞서 공격했을 때, 바울은 돌을 맞게 되었다.
    이들은 바울을 성 밖으로 끌고 가서 바울이 죽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곳에 내버려 두었다. 바울의 운명은 서구나 한국과 같은 나라에 사는 우리들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어찌했거나, 우리들도 또한 인정받는 일이나 믿음의 적을 통해 우리 자신이 제거당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당시에 바울은 사람들을 각종 우상들로부터 구해내어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했었다. 오늘날 우리는 열정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주위 이웃들에게 말과 행동 안에서 증거해야만 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바울과 똑같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오늘 본문과 관련해서 나찌가 유태인 학살에 혈안이 되었던 1942년, 프랑스 중심부의 작은 도시인 르 샹봉 Le Chambon에서 유대인 도망자들을 숨겨주면서 구해 내었던 한 목사님 부부에 대해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이 도시 사람들은 물론 과거 종교개혁 때, 무참하게 박해를 당했던 프랑스 칼빈주의 추종자들이었던 위그노파를 생각해서 도망 온 유대인들에게 방을 제공하고 물심양면으로 돕는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이 소문을 듣고 프랑스 도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이곳을 거쳐서 스위스로 무사하게 탈출함으로써 오천여 명의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 학살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이런 봉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놓아야만 하는 위험인 줄을 알았지만, 이것이 이들에게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헌신이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해오던 윤석열 수사팀장이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도, 범죄와 단호하게 맞서야 하는 "검사"로서 본연의 임무와 책임을 다한 사실이 국감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세상적 가치로 두려움을 가져오는 것보다 더 강한 양심의 외침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새로운 한 주간이 되시길.........  샬~~~롬

     행 14, 1 - 20   눅 23, 17 - 26  (지난 묵상 링크)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행 14, 19)

   

 

배경 찬송은 "부르신 곳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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