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대한 통치력

 

2013년 5월 20일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들 중에서 오늘 이 사건보다 더 긴장감이 넘치는 사건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함정에 빠져들어 감으로써, 사람들이 마침내 예수를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이들은 하필이면 국가와 권력자에 대한 자세에 대한 다루기 어려운 특변한 질문을 했었다. 예수님은 이들의 비판과 불순한 의도를 간파하셨다. 예수님은 이 논쟁에 응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참된 왕과 지배자" (시 93, 1), 살아계신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게 하신다.

    우리들의 삶과 경배는 오로지 하나님께 속한다. 그때문에, 모든 다른 통치권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영광과 바꾸거나 뒤섞어서는 안될 것이다. 유일한 하나님, 삶과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이 우리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두 세계에 속한 시민 (빌 3, 20)으로서 우리들은 늘 거듭해 최종적인과 잠정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도록 요구를 받는다.

    도대체 누가 우리의 양심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될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양심을 하나님 말씀에 근거를 둬야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루터 Martin Luther는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포로가 되었다"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 우리들 각자는 양심을 소유하고 있으며, 우리들 모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과 악이 무엇인지'를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우리들 자신은 도대체 어떤 주님를 섬기고 사는가?! 수많은 세상 권력과 정권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말해 줄 수 있음을 주장하는 일에 열을 올립니다. 그 어떤 통치 아래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내적 양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  정권들의 속임수에 홀리지 않음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복된 새로운 한 주간이 되시길.....  샬~~~롬

    눅 20, 20 - 26    10, 34 - 39  (지난 묵상 링크)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눅 20, 25)

   

 

배경 찬송은 "일어나 새벽을 깨우리라"입니다.

 

  5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