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눈길로

 

2013년 5월 13일

  

 

    예수님이 여리고 성에 오셨을 때, 삭개오가 이미 자주 체험했었던 "사람들은 흔히 키가 작은 사람을 간과한다"는 경험이 반복되었다. 주위에 서 있었던 어떤 사람도 삭개오가 통과해서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들이 의식적으로 삭개오를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들은 삭개오를 일상에서 작고 불쌍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삭개오는 세리로서 자신의 권력을 남용했었고 이들의 희생으로 자신의 이득을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보기 원했으며 결국은 나무 위로 올라갔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삭개오의 작은 체구가 눈에 잘 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를 결코 간과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삭개오가 누구인지'를 보셨음에도 불구하고, 삭개오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신다. 시원한 여름비와도 같이, 예수님의 친절은 삭개오의 위축된 영혼을 적신다. 이렇게 삭개오의 마음은 옥토로 변한다. 이 땅 속에서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의 씨앗이 싹을 내고 크게 성장하여 열매를 맺는다.

    본문에 등장하는 삭개오처럼, 자신들이 컴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내어보이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소위 우리나라에서 전혀 "보수"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자칭 "보수"라 외치면서, 정의를 외치는 일반 시민들은 "색깔론"과 "종북몰이"를 하며 권력욕을 쫓고 있는 사람들에게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속내막이야 어찌했건, "의병 (/) 윤창중" 전 대변인은 이른 시간에 호텔방으로 여성 인턴을 불렀으며, 그녀를 "노펜티" 차림으로 문을 열고 맞이하는 '성추행'을 한 그가 철면피한 기자회견까지도 서슴치 않습니다. 이 기자회견을 듣고서도 맨정신으로 "종북의 음모"라고 사족을 다는 "변희재"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바로 컴플렉스를 가진 "자칭 대한민국 보수세력"들의 특징일 것입니다. 한국 언론의 장을 도배질한 "청와대와 '노펜티맨' 윤창중 사이의 진실 게임"은 "공직기강팀 조사에서 '여성 인턴의 엉덩이를 만졌다', '펜티를 입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인했고 자필 서명까지 했다"는 사실확인으로 "자칭 보수"의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난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눈은  바로 "
마음의 창"인 것입니다. 두 눈을 통해 당사자의 마음과 영혼을 읽을 수 있으며 시선이 향하는 방향이 곧, 관심의 대상인 것입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나무에 올라 예수님께로 시선을 돌렸고,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의 관심을 알아채시고 사랑의 눈길로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유능하고 선한 정원사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을 "사랑의 눈길"로 관찰하시고 우리 안에 감추인 가능성을 보시는 일은 얼마나 선하고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들고 싹을 내고 활발하게 성장하는데 필요로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베푸십니다. 올바른 긍정의 눈, 사랑의 눈을 가질 수 있는 복된 새로운 주간이 되시길.....  샬~~~롬

    눅 19, 1 - 10   눅 9, 43 - 48  (지난 묵상 링크)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눅 19, 3)

   

 

배경 찬송은 "내 삶의 이유라"입니다.

 

  5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