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빵과 나무들

 

2015년 7월 5일

      

    몇 마디 말로 오늘 시편 107편 구절에서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실제로 요약해 표현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의 평안이 곧 하나님 마음의 주 관심사이다'는 사실이다. 관심을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한 메시지는 성경 전체의 구원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하나님의 관심 때문에 우리는 신구약 성경의 서두에서 수많은 풍성한 과일들로 정성스럽게 가꾼 에덴동산을 대하게 된다. 그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노예생활로부터 해방되게 된다. 그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 생활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고 샘과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게 된다. 그때문에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생명을 위한 내적인 방향제시로서 십계명을 선물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한 아이가 내놓은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오병이어 기적"을 대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메시지를 내적으로 비우고자 하셨기 때문에,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 35)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인간들을 우선 배불리 먹이고자 하신다.

    예수의 "생명의 빵"과 관련해서 성경 번역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타히티 섬에서 선교사들이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인 "생명의 떡"을 원주민의 말로 번역하고자 했을 때, 선교사들은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타히티 섬에는 곡식이 아예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빵"을 아무도 상상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된 양식이 유럽인들이 "빵과일 나무"라고 불렀던 나무의 과일들이었던 것입니다. 타히티 섬에서는 이 나무들을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베푸신 가장 귀한 선물'로 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세 그루 '빵과일 나무'를 심은 사람은 자기 전 생애 동안 양식 걱정을 안해도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빵이 없었던 한국에서 선교사들이 한국말로 '빵'을 '떡'으로 번역한 것처럼, 선교사들은 "생명의 떡"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번역하는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타히티어로 "나는 생명의 빵과일이니, 이 빵과일을 먹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니"라고 번역하게 된 것입니다. 목마르고 주린 영혼에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복된 주일이  
되시길. .....   샬~~~롬

   시 107, 1 - 22   딤전 1, 12 - 17   (지난 묵상 링크)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 107, 9)

   

 

배경 찬송은 Bach의 "Brich dem Hungrigen dein Brot"(BWV 39)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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