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아버지와 지도자

 

2013년 6월 21일

   

 

    젊은 여호아하스가 어떤 생각, 꿈과 결심으로 자신의 아버지인 요시야의 왕위에 스스로 올랐을까?! 요시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예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 강력하게 대응했었다.
    요시야왕의 아들은 유년 시절에 들어 알게 된 것이 있고 그가 그곳에서 계속 행할지에 대한 물음 앞에 서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살고자 하며 부모에게서 무엇을 물려받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여호아하스왕에 대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32절)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 요시야왕의 업적을 무너뜨리고 백성들을 옛 우상에게로 유혹하는데 석 달만으로 족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타인들이 그의 삶을 결정하게 된다. 그는 스스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회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파라오는 그를 궁지에 몰았다. 어떤 사람이 석 달이든  삼십 년 동안 자기 권력을 남용하고, 사람들이 이것에 피해를 입고 잘못 인도되는지 아닌지는 별로 상관없다.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들이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각종 기대와 꿈을 가지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감명할 만큼이나 아주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의 어버지는 대부분 다르고 자주 부재중인 아버지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폭력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의 아버지는 "아버지"란 개념 자체를 의문시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는 육신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듣는 청년들에게 해방의 메시지가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늘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아주 가까이에 거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폭군이 아니라, 우리를 무한한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 육신의 아버지들은 감명을 받아 이런 사랑을 자녀들에게 계속 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국민들에게 부모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현대사회의 권력자들에게도 결코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감화됨은 물론 계속 이웃들에게 전하고 실천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왕하 23, 26 - 37   마 17, 14 - 21  (지난 묵상 링크) 

       

  

여호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삼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왕하 23, 31)

   

 

배경 찬송은 "이젠 주의 사랑으로"입니다.

 

  4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