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신 영혼의 심연

 

2013년 6월 3일

   

 

    수많은 사람들은 "적어도 '나는 유다가 아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라고 생각한다. 이런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다른 측면에서는 '유다가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  예수 주위의 가장 친밀한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분명하다.
    유다는 항상 예수님과 함께 전도여행 중에 있었고, 기쁨과 고난을 예수님과 함께 나눴던 사람이다. 유다는 결코 낯선 이방인이 아니었으며, 배신자는 바로 내부로부터 왔던 것이다. 특별히 추하고 나쁜 것은 배신자가 친절하고 아주 유순한 얼굴로 다가오는 일이다. 유대인들에게 친숙한 인사인 입맞춤이 원수들에게는 "이 사람이 바로 예수다"는 신호가 되었던 것이다.

    성경은 아무런 미화도 하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 주위의 가장 친밀했던 주변 인물에 대한 문제였을지라도, 타락은 전혀 감춰지지 않았다. 또한 성경은 어떻게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되는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은 절대적으로 머무시고 심지어는 이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도 원수의 귀를 치유하신다. 이렇게 예수님은 "어둠의 권세" (53절)를 이기신다.

    오늘 말씀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입맞춤으로 배반하는 절벽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대하게 됩니다. 젊은 시절에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적 앞날을 결정해야 할 때, "자기 자신의 영적인 문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자신을 위해 베푸신 각종 은사들과 자신의 한계에 대해 그리 많은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자신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쓰잘 데 없는 수많은 것들을 우리 안에 스스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일에 열심을 다해 관여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으로써, '우리 안에 존재하는 심연을 감지하지 않기 위함이 아닌지' 를 자문해 보게 됩니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우리는 마침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의 열정이 식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된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는 열정이 그것입니다. 이 열정은 이웃을 위해 보다 강건하고 보다 더 의젓하며, 더 자유롭고도 즐거운 것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 영혼의 심연을 감지하고 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복된 새주간이 되시길..
....  샬~~~롬

    눅 22, 47 - 53   히 10, 1 - 18  (지난 묵상 링크)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눅 22, 61)

   

 

배경 찬송은 "진정한 사랑이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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