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을 목걸이로 폭력을 옷으로 삼는

 

2014년 5월 18일

     

 

    일요일에 태어난 아이들, 소위 행운아들은 삶의 양지에 항상 거하고 자신들의 삶 속에서 행운을 가지게 된다. 어떤 걱정도 이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행운아가 "불신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시편 기자는 비유로 이들의 입이 하늘 높은 줄을 모를 정도로 뽐내는 뚱보로서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을 찾는 다른 사람들은 각종 타격들과 다투며 목까지 차오르는 걱정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깊은 하나님의 위기 속으로 우리를 추락시킬 수 있다. 누가 이곳에서 자신을 땅 위로 오르고 "성공적인" 생활방식을 따르고자 시도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이후에 변화가 온다.

    시편 기자는 절망보다 더 강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란 비밀이 우리 삶 속에 있음을 주지하고 있다. 주를 가까이함이 우리 삶에서 가장 내적인 발판이 되고자 한다. 그때문에 그는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라고 기도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이 더 건강하고 부유하거나 교육을 많이 받았을지라도, 생명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도래한다. 우리 인생의 전체 결산은 하나님의 무제한적 긍정인 것이다.

    시편 73편의 제목은 "잘 사는 악인들의 종말"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갖은 악행을 다하고도 세상적인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시편 기자와 같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베푸신 모든 것으로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됩니다. 장벽을 사이에 두고서는 우리는 아무 것도 새롭게 시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구별이 되며 이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베푸시는 것임을 고백해 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에서 오늘 시편의 등장하는 인간상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선장과 항해사 등 세월호 승무원들이 '가만있으라'는 방송을 남긴 후에 배를 떠나는 순간에도 22살의 박지영 승무원은 끝까지 학생들을 안심시키며 구조선에 오를 수 있도록 돕다가 자신의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참사를 두고도 한국 공영방송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이 "서울 지하철 사고는 키우고 세월호 사고는 줄이라"는 간악한 짓으로 '교만을 목걸이로 삼고 폭력을 옷으로 삼고' (6절) 있던 무리들을 폭로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세상적 평안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피난처로 삼을 수 있는 복된 주일이 되시길 ..........  
샬~~~롬

   시 73   고전 1, 18 - 25   (지난 묵상링크)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 73, 23)

   

 

배경 찬송은  "피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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