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까이 다가감

 

2014년 5월 4일

     

 

    시편 138편이 기술하는 것에 대해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면, 아마도 '선생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종이 위에다 그려보라"는 부탁을 받은 초등학교 2학년의 그림과 비슷하게 표현될 것이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저 높은 곳 천상의 높은 보좌에서의 백발의 아버지 형상이다. 이 형상이 개미처럼 작은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시편 138편은 어찌했건 "아래로 내려봄"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주의 깊게 바라보시며 주목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의 믿음의 역사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다.

    하나님은 지극히 가난한 조건하에서 "세상으로" 오시어 "땅 위에 모든 왕들" (4절)이 허리를 굽힐 아기 예수 안에서 거대한 간격을 극복하신다. 예수님은 낮고 누추하고 부족한 길을 택하셨다. 우리 인간들에게로 가까이 오시기 위해 하나님이 이런 특별한 길을 택하신 것을 우리 인간들은 감사해야 할 일이다.

    불행이나 슬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실제로 가까이 다가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것을 온전히 내려놓고 기꺼이 불행이나 슬픔의 당사자 입장에 설 때야 겨우 가능할까 말까 할 일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위험과 손해를 감수하고 자신의 손발을 더럽히지 않고서는 당사자의 슬프고 힘든 입장에 서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예수님을 뒤따르는 일은 우리를 인간적인 고난의 심연 속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쓰지 말고, 오이밭에서 신발끈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로 불행을 당한 가족과 수장되다시피 한 어린 생명들의 입장에 서야 할 엄중한 시기에 이런 의심받을 일을 서슴치 않았음을 자백까지 하는 청와대를 접하고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조문 가서 찍은 GH가 한 유족을 위로하는 장면이라고 언론에 공개된 사진으로 갖은 의혹이 더해지자, 급기야 청와대 대변인이 "GH가 조문할 때 가까이서 뒤따르라"고 사전에 섭외해서 찍은 사진이지 "연출은 절대 아니다"고 해명한 사실은 더욱 기가 막힙니다. 애석하게도 아직까지 자신이 한 국가와 정부의 무책임으로 인해 명을 달리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상실하고 있는 슬픈 "대한민국의 현주소"임을 고백합니다. 세월호로 인해 생명을 잃은 당사자들과 가족을 위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도의 뜻을 표현할 수 있는 복된 주일이 되시길 ..........  
샬~~~롬

   시 138   롬 16, 25 - 27   (지난 묵상링크)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시 138, 6)

   

 

배경 찬송은 "나의 힘이 되시 여호와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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