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이슬 같은 주의 자녀들

 

2013년 4월 14일

   

 

    오늘 시편 110편은 이스라엘에서 유밀무이한 통치자를 위한 찬양시이다. 통치자인 왕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을 수 있다. 이 가운데 하나님은 비유적으로 왕좌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고, 기름 부은 왕은 그 옆에 앉아있는 것이다. 왕의 발아래 항복한 적들이 무릎을 꿇었다.
    절대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만, 이 왕도 단지 죽음을 면치 못하는 인간일 뿐이다.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권력을 인정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런 자리를 맡기는 사람은 유대 민족의 판단에 따르면 이미 출생 이전에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사람은 어둠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른 아침 여명으로부터 오게 된다. 또한 그의 자녀들도 하늘로부터 출생적 유산을 얻게 된다. 루터 Martin Luther도 이것을 어려운 원전 텍스트에서 이렇게 이해했었다. 신약 성서와 함께 우리들도 시편 110편을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나라의 왕 가운데서 보았던 모든 것의 궁극적인 실현이다"는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로서 이해하고 있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생식과 출산에 대한 모든 자연적인 연관성을 잘 알고 있으며, 또한 이에 대해 아주 실제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자식이나 금방 태어날 아이 문제라면, 이들도 아주 객관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게 됩니다. 한 가정에 갓난아이가 태어나면, 이 자체는 "우리 모두가 감사해야 할 기적"임을 의미합니다. 물론 기적에 대한 감사는 모든 생명을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속하게 됩니다. 가장 객관적인 판단은 "우리 피조물은 거의 모든것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새로운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에 속한다"는 고백일 것입니다. 새벽 이슬같은 주님의 자녀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복된 주일이 되시길......  샬~~~롬

    시 110   엡 6, 10 - 17  (지난 묵상 링크)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 110, 3)

   

 

배경 찬송은 "주께 가오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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