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함께

 

2013년 4월 20일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은 곧 "구원을 받게 되는 것" (23절)을 의미한다. 단지 적은 숫자만이 구원받게 될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예수님은 대답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임의의 다른 것들에 대한 이론적인 관점을 질문하는 자들에게 "너희들은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하여 분투해야만 한다"고 원점으로 되돌리신다. 우리에게 즉시 "왜 분투를? 하지만,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모든 것을 하시지 않았던가?"라는 다음 물음이 제기된다.
    문은 이미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들이 들어갈 만큼 넉넉하게 맞을까? 아버지 집에 거할 거처가 이미 있다. 우리들은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을까?! 문과 집이 없이는 각종 분투는 무의미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을 통해 가는 일을 방해하거나 장애가 되는 것들과 맞서 싸워야만 한다.

    죄와 하나님 없는 삶으로는 아무도 문을 통과할 수 없다. 그 대신에 구역 모임을 통해 누가 구원을 받고 받지 않을지에 대해 토론하는 대신에,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무엇인가를 행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될지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도 "우리가 이웃들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행했는지" 질문하실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좁은 문"에 대한 개념을 하나님의 안목에서 다르게 생각해 봅니다. 일상 속에서 시종 일관된 믿음에 이르는 길은 매일 기도생활,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로 향하는 문은 세상에서 통과해야 할,  입시, 취업과 승진 등의 각종 관문들과는 다릅니다. 상대방과 경쟁해야 하고 낙오시켜야만 자신이 통과할 수 있는 "좁은 문"이 결코 아니라,  가능하면 많은 이웃을 구원으로 인도하여 하늘나라로 더불어 함께 가는, 구원을 받은 자들의 행렬로 가득 찬 "좁은 문"입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서 있는 위치에서 이웃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여 가능하면 "좁은 문"으로 함께 들어가기를 힘쓰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눅 13, 22 - 30   호 12, 1 - 7  (지난 묵상 링크)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 13, 24)

   

 

배경 찬송은 "좁은 길 좁은 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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