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축복이 되어야 할지니

 

2013년 4월 3일

   

 

    사람들은 '이별은 슬프다"고 흔히들 말한다. 역이나 정류장에서 이별의 감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가까이 체온을 느끼고 싶어하며, 결국에는 아쉬움을 남기고 서로서로 떨어져야만 한다. 심지어 공항에서는 체크인한 뒤에 보안검사 입구에서 이미 헤어져야만 한다.
    이와는 달리,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확실한 이별을 한 뒤에도 유례가 드물게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베다니로 데리고 가서 두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해 주셨지만,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보이시지 않는다. 그런데, 제자들은 결코 홀로 남아있지 않다. 왜냐하면, 축복은 이별이 아니라, 예수님 임재의 선물이기 때문이며, 예수님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느끼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 깊이 자리 잡고 계신다. 제자들은 큰 기쁨을 가지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간다. 그런데,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된다. 이것으로써 우리들도 큰 기쁨으로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으며, 주위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축복을 계속 전해 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없이 축복에 대한 기대를 크게 합니다. 더 이상 물을 필요도 없이 온정에 대한 요구도 대단히 높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분노, 절망과 불확실성에 무조건적으로 긍정해야 할 필요성도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거칠고 깨어지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축복은 우리들에게 과연 무엇을 베풀 수 있을런지요?! 우리들에게 축복은 '너희들은 불안정 속에서도 잘 극복해 왔다. 불완전조차도 정상이었으며, 실패도 전체의 일부분이었고 번뜩이는 생의 환희도 간절히 원했다. 죽음조차도 결국 삶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축복도 의미와 부가적 능력을 부여하는 삶을 구성하는 것들의 한 영역 안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이미 축복을 받은 자들로서 세상과 이웃들에게 은혜, 소망 그리고 화평을 나타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눅 24, 50 - 53   고전 15, 35 - 49  (지난 묵상 링크)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눅 24, 50)

   

 

배경 찬송은 "Du sollst ein Segen sein - 너희는 축복이 되어야 할지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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