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속편이 뒤따를지니

 

2015년 6월 13일

     

    하필 이런 확대된 속임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의 역사의 서두에 속해 있다. 야곱의 대답이 보여주듯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여호와는 이 거짓말 안에 함께 삽입된다.
    다른 한편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여굡과 더불어 하나님의 역사를 보충하여 기록하고자 하신다 (창 25, 23). 노령의 이삭이 이에 대해 아무 것도 듣기를 원치 않았던 것인지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계속 달리 발전시킨 것인지를 아는 일은 분명하게 흥미진진하다. 이것으로써 야곱은 축복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적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 은폐가 된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축복사를 계속하신다. 죄와 축복의 역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 예수 가운데서처럼 자주 함께 속해 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마 27, 25)고 사람들은 외친다. 사람들은 예수의 죽음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생명을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청결케 한다.

    독일 작가인 토마스 만 Thomas Mann은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라는 소설에서 야곱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성경과 비교하면서 읽게 되면, 아주 흥미로울 것입니다. 성경 이야기는 축복을 위해 속임수에다 계속 속편을 이어갑니다. 에서는 자기 자신의 손으로 동생 야곱을 헤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으로써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더 이상 속편이 되지 않도록 합니다. 이 이야기는 말솜씨가 뛰어난 야곱이 원래 실패자 즉, '어머니의 술책으로 인한 피해자'로 표현하는 일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카역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야곱은 심지어 외삼촌을 약탈하지만, 야곱을 용서합니다. 또한 문학적인 결과도 "축복은 이미 저주의 사건 한가운데서 시작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창 27, 1 - 29   행 18, 1 - 11  (지난 묵상 링크)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창 27, 20)

   

 

배경 찬송은 "축복하노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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