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이해할 수 없는

 

2015년 6월 19일

     

    야곱과 라헬 사이에 사랑 이야기가 아주 아름답게 시작하는 것처럼, 야곱과 장인 라반 사이에 악의에 찬 대화로 이것은 거의 중단된다. 거짓말쟁이 야곱이 이제 스스로 속임을 당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을 위해 전형적인 일이 아닐까?! 한 때는 이 사람이 실행할 계획들과 방법을 가졌고, 다른 때는 다른 사람이 유리하게 놓여있고 빨리 반응하며 훨씬 더 성공적이다. 이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밀한 인도하심을 보아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단지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들의 성공에 부합되지 않아 보이는가?!

    또한 "이삭의 경외하는 이" (창 32, 42)라고 불리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전 세계를 위해 축복의 흔적을 남길 수 있으시다. 여호와는  라반의 속임수까지도 자신의 선한 의도로 야곱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일에 기여하실 수 있다. 라헬이 아닌 레아가 우리 구세주의 시모가 된다 (마 1, 2).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자 한다. 이것으로써 우리는 생명을 위해 속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하나님의 역사가 보이지 않게 은밀한 상태에 있습니다. "왜?"와 "무엇을 위해?"란 수많은 질문들이 대답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습니다. 우리에게 아주 많은 질문이 수수께끼처럼 남아있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이 비밀스럽게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소년이 작은 삽 하나로 4대강 보에 갇힌 물을 가뭄으로 갈라진 고향 농토로 물길을 터고자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비밀과 복음을 인간 이성에 전하고자 하는 일도 바로 이 어린 소년이 작은 삽 하나로 물길을 내고자 하는 것과 똑같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창 29, 15 - 30   눅 23, 44 - 49  (지난 묵상 링크)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창 29, 25)

   

 

배경 찬송은 "주님 너를 부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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