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자라는 칭호

 

2012년 7월 7일

  

 

    먼저 일이 다르게 발생하며, 다음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일어나게 된다. 이런 삶의 지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위해서는 쓰라린 진심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개입이 아무런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 도취된 사람들의 아름다운 말들은 유다왕국의 실제적인 상황과  전혀 맞지 않았다.
     보는 사람의 비젼은 하나님과 인간의 경계선을 보이지 않게 지워버렸다. 그런데, 선지자가 자신의 냉혹한 현실에 내세워져도, 하나님에 대한 예레미야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삶의 깊은 늪도 바로 믿음을 위한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거나  결코 방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사실은 패배를 위해 큰 힘을 준다. 우리들이 꿈 속으로 피해갈 필요는 전혀 없다. 희망은 우리를 인내심을 가지도록 하며, 이것으로 우리를 곤경에서 지킨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고,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롬 5, 4 이하)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결국은 아무 것도 헛된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이러한 험난한 시대를 가로질러 친절하게 인도하시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당신의 나라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참된 선지자들은 결코 듣기 좋은 메시지를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르게 그들이 하나님의 안목을 제시하고 강조했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 몸소 당신의 백성들에게로 나아오시는 임재의 말씀'으로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부름꾼 이외는 다른 존재가 결코 아니며,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객관성은 선지자가 자신의 말씀선포에서 하나님 말씀 자체와 자기 자신의 설교 내용을 분명하게 구별하는 일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의 매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와 같은 선포의 형식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예언적 설교는 어떤 면에서 많은 자유가 허락됩니다. 예언자는 변명을 필요로 하는 인간도 아니며, 물론 왕이나 제사장이 아니라,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신 야훼께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한때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은 "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움 받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것도 모자란 나머지, "하나님의 사자"라고 부름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목회자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참뜻을 제대로 전하고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적 도구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존칭인 것처럼 착각하는 우매함에서 깨어나 본연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임을 고백해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전하는 메신저들로서의 사명을 다하여 알곡이 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렘 23, 21 - 32    10, 38 - 42  (지난 묵상 링크)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렘 23, 28)

   

 

배경 찬송은 "Wo ich auch steh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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