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2012년 7월 1 일

  

 

    시편 139편은 무조건적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존재하심은 또한 두려움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도처에 존재하는 감시자나 추적자로서 하나님을 오해할 수도 있다. 선지자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침을 통해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도망하고자 했을 때, 그는 이것을 이미 체험했었다.
     무엇보다도 믿음에 대한 문제라면, 시편은 실제로 사람들이 체험하고 고난을 당하는 긴장감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시편기자는 때로는 이것을 전적으로 ' 아무 곳에서도 하나님과 연관이 없을 수 없다'고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나는 이것을 또한 큰 복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자신이 어디에 거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고 무엇이 그를 움직이든지에 아무런 관계없이, 곳곳에서 하나님 안에 보호되며 하나님에 의해 지지받는다. 이것이야말로 두려움에 빠진 상황에서 위로와 발판이 된다. 심지어 하나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각종 두려움이 팽배하는 곳에서도 위로가 되어 주신다. 이것이 실제로 믿음인 것이다.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음은 심한 믿음의 위기로 몰고갈 수 있습니다.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불행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왜 지금과 다르게 될 수는 없을까?"하고 물음을 던지게 되고 하나님의 긍휼 안에서 믿음이 크게 흔들리게 되지만, 희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우리들의 각종 질문보다 더 크며 또한 우리들의 각종 실망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시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와 함께 나누지 않으신 고통과 아픔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계속 존재하시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 복된 7월, 7월 첫번째 주일이 되시길....  샬~~~롬

   시 139   벧전 5, 5 - 11  (지난 묵상 링크)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 139, 3)

   

 

배경 찬송은 "Herr wohin sonst"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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