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보다는 나은 인간이  되고자

 

2013년 11월 27일

     

 

    인간이 어디에 속해 있으며 누구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아는 일은 지극히 자연적인 세상사의 일로 보인다. 심지어 가축들도 이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인간들도 역시 그러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머리를 흔들어 부정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신 앞에 서 계신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각종 방법으로 자신들의 삶을 지탱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린다. 이 일과 비교될 정도로, 소나 나귀가 주인이나 자신을 사육하는 인간으로부터 언젠가 한 번쯤 외면하게 될까?

    오늘 본문에서 소와 나귀가 우리 인간들에게 '너희가 누구에게 속했으며, 너희는 누가 너희 생명을 책임지며 유지케 하는지 알고 있기나 하니?'고 질문하고 있다. 우리가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어디에 속해 있으며, 누가 우리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부여하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도 있을 수 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 안에서 소와 나귀는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께 속해 있다. 여호와는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너희는 물론이고 세계 만민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한다.

    아주 오래된 성탄절에 대한 성화를 보면,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말구유 안에 뉘인 아기 예수를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상 깊게도 그림에는 누가복음이나 마태복음의 성탄절 이야기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장면, 단지 소와 나귀에 둘러싸인 아기 예수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묘사의 근원은 누가복음 2장에 3번씩이나 반복되는 "말구유"라는 표현입니다. 이 단어가 곧 오늘 묵상 텍스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에서 등장하는 소와 나귀는 우리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성탄절 이야기의 연관성을 생각나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두 짐승, 소와 나귀는 "너희는 말구유에 뉘인 아기예수에게서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자를 알아보겠니? 너희는 전 세계 만민을 구원하실 말구유에 뉘인 이 아기 예수에게 속하기를 진정으로 원하니?"라고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와 나귀가 우리 인간들에게 던지는 질문에 "아멘!"으로 고백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사 1, 1 - 9   34, 1 - 7 (지난 묵상 링크)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사 1, 3)

   

 

배경 찬송은 "작은 불꽃 하나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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