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한 곳에

 

2013년 11월 28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대신에 바친 제물을 취하셨다. 이에 대해 "왜!"라고 질문하게 된다. 왜냐하면, 제물과 생명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들이 목숨을 걸고 이야기하며 고백하는 것들을 전부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각종 요구들과 현실이 아주 동떨어진 것일까?
    아침에 거울을 들여다보는 눈길 속에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게 된다. 성경을 이해하고 보는 눈길은 우리가 실제 어떠한 존재인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외모는 아직도  변화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선행을 배워야 한다면, 우리 자신의 내부를 변화시켜야만 할 것이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것은 원래 그리 대단한 일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간단한 요구에도 우리는 늘 반복해서 실패하고 오만에 빠지게 된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 즉 고독한 자, 가난한 자, 실망에 빠진 자가 있는 곳에 바로 선행이 싹트기 시작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이러한 고통을 보고, 이런 사람들을 품을 때에 마침내 우리의 참된 사랑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먼저 믿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시도록' 간절한 중보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다.

    시골 농촌에 슬레이트 지붕에 허술한 마루바닥으로 세워진 시골 교회 모습을 연상해 봅니다. 바쁜 농삿일을 멈추고 예배에 참석하는 형제자매들은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리고 땀에 절은 모습들입니다. 자매들은 예외 없이 작은 어린이들과 젖먹이까지 데리고 예배에 참석합니다. 가까이 앉은 한 자매는 어린 세 자녀를 곁에 앉혀두고 품에는 젖먹이를 안은 채로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자매가 기도에 집중할 때, 눈물이 뺨으로 끝없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때, 갓난아이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젖먹이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필요성과 기도를 간절히 드리고 싶은 갈급함으로 어찌할지를 몰라 안절부절해 합니다.
    바로 이 순간에, 아름다운 일이 순식간에 교회 안에서 벌어집니다. 곁에서 기도하던 한 자매가 이것을 눈치채고는 조용히 다가가서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자신의 젖을 물렸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갈급한 자매는 계속 기도할 수 있었고 속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보다 풍부한 물질과 좋은 시설,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이 다양한 현재의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서로서로의 갈급함을 위해 이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소망해 봅니다. 풍요함을 누리는 현재 일부 한국 교회의 모습은 "독재가 좋았고 필요하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갈급한 이웃들을 위해 선한 사마리안의 모범을 몸소 실천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사 1, 10 - 20,  벧전 1,  13 - 21 (지난 묵상 링크)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 1, 17)

   

 

배경 찬송은 "우리가 나눈 사랑으로 인하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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