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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얼굴을 보고자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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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7일 |
오늘날
성경적 메시지는 자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압축된다. 이것은 틀리는 메시지는
아니지만, 너무나도
간결하고 단순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또한 인간세계에서의 정의를 위한 열정도 가지고 계신다. 공의는 하나님의 계명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공동체의 준하는
행동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그 때문에 또한 하나님께 공의 가운데서의 삶은 일치한다. 단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감하는 일은 너무나 사소하다. 불의는 하나님의 존재와는 모순이 된다. 공의를 향한 갈망은 "이 땅 위에서의 경건"의 특성에 속한다. 시편 11편의 시편 기자뿐만이 아니라, 예수님도 마지막 날에 '하나님을 보게 될 것" (마 5, 8) 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오늘
시편 11편은 히틀러와 나찌들이 세상의 법과 질서를 짓밟았을 때와 같은 시대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상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너는 새처럼 산으로 도망가라" (1절)고 위협하며 으슥한 곳에 숨어서 선한
사람들을 죽이려고 (2절) 매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공의롭지 못한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나찌 정권때 독일에서 추방당했던 신학자 바르트 K. Barth는 "정치적
의무수행은 우리들에게 세금 납부와 그 외에 다른 수동적인 법의 준수에 단지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치적인 의무수행은 정치적인 투쟁의 의미를 지닐 수 있고 또 지녀야만 하는 적극적인 정치적 행동의 언어로써
책임있는 선거, 시행되어야 할 각종 법들의 책임있는 결정, 법 시행에 대한 책임있는 감독을 의미한다"고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에 대해 역설한 적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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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 11, 7) |
배경 찬송은 "그 얼굴 바라볼 수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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