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긍휼이란 선물

 

2013년 11월 18일

     

 

    몇 년 전부터 바울은 예수에 대한 자신의 믿음으로 인해 감금되어 있다. 유대 민족의 주도권을 쥐고있는 계층들이 모세 율법과 로마법을 위반한 자로서 새로 부임한 로마 총독 베스도에게 그를 또한 고소했다.
    심지어 바울은 자신의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불의한 비난들에 맞서 방어하고, 모범적으로 '기독교적인 존재는 질서있는 인간적 공동생활을 결코 헤치지 않는다'는 입장에 서 있다.

    그런데, 권력자가 헌법과 법의 핑계로 자신들의 관심만을 추구하는 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장애물이 된다. 바울은 로마 황제의 법정에다 호소한다. 재판을 고집하는 일이 최소한의 질서를 인간적인 악행과 방자함의 혼란 속으로 이끄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창조 역사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는 근본 주제로 성경 전체를 흐르고 있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미 구약에서 은혜롭고 긍휼하신 하나님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은혜는 단순히 동정이나 용서, 그 이상의 무엇입니다. 단지 하나님 이름을 말할 수 없음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단지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해도 됩니다. 단지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 자신을 결정하면, 한 번쯤 은혜에 대해서 말해도 될 것입니다. 단지 원수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와 복수가 유효한 현실로 남아 있으면, 용서와 원수 사랑에 의해서 어느 정도 우리 마음은 감동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맨 마지막 말을 맨 끝에서 두 번째의 말 앞에 굳이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말을 안 해도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맨 마지막 이전 시대를 살고 맨 마지막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석하게도 21세기 한국 땅에서는 자기들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마지막 말이자 누구를 향해 외치는 말인지도 모를 "석고대죄하라!"는 막말만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긍휼을 바라고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복된 새로운 한 주간이 되시길.........  샬~~~롬

     행 25, 1 - 12   18, 19 - 24  (지난 묵상 링크)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행 25, 8)

   

 

배경 찬송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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