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의 힘

 

2014년 6월 19일

     

 

    대제사장 가야바의 말은 예수를 죽이기 위한 결론을 위한 첫 신호였다. 그는 '예수가 계속 기적을 행하고 예수께 더 많은 사람들이 뒤따르게 되면, 로마군이 공격하고 유대인을 내쫓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때문에 가야바는 '예수가 죽는 것이 훨씬 간단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은 평화 속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제사장은 '자신의 주장이 아주 심오하고도 예언적인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런 생각을 가지도록 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죄가 없었고 죄인들을 위해 죽는 한 인간이었다. 그리스도는 단지 유대 민족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들 심지어는 로마인들 앞에서는 아니지만, 영원한 죽음 앞에서 구해낼 수 있다.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면전에 설 수 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켰던 죄를 지셨다. 그렇다! 한사람이 죽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진 사실은 우리를 위해 얼마나 선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 모든 민족들은 예수를 통해 구원될 수 있는 것이다.

    말과 글은 세상을 움직이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자신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한 말들인 경우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은 순간적으로는 넓게 퍼지게 되는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아무런 것도 알지 못합니다. 글이나 말로 일단 우리 곁에서 떠난 것은 먼 훗날 되돌아 볼 때와 역사적인 결과를 통해 처음으로 분명해지게 됩니다. 1989년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여행법이 '즉시' 그리고 '지체 없이' 효력을 발휘한다"는 말로 동서독 사이에 놓인 장벽은 무너지기 시작되었습니다. 동베를린 시민들은 즉시 국경 경비초소로 달려갔고 서베를린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동독과 서독을 가로막고 있었던 장벽이 단숨에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이 말 한마디가 장벽을 아무런 의미가 없도록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원했기 때문에, 단지 가능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하나님의 뜻"이란 말이 한국내에 이미 산재한 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장벽을 더 높이 쌓아가고 있습니다. 더 우스운 일은 그의 말에 일본 언론에서 자기들의 총리 후보가 임명이라도 된 듯이 좋아라 쌍수를 들고 반기고 있습니다. 정작 후보자 본인은 "교회 안에서 한 강연일 뿐" 내지는 "기자 시절에 쓴 글들"일뿐이라 궁색한 변명을 하면서 국민들의 자존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70년 가까이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거부하면서 오로지 "총리가 되면 달라질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 내지 임기응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속담처럼 '평생을 샌 바가지가 총리 몇 년에 새지 않을리가 만무'할 것입니다. 말과 글의 힘을 알며, 하나님의 뜻을 말씀에 근거하여 헤아릴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요 11, 46 - 57   요일 3, 7 -  12  (지난 묵상링크)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일이다 (요 11, 50)

   

 

배경 찬송은  "주 말씀을 향하여"입니다.

 

  6 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