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믿는 것

 

2014년 6월 6일

     

 

    목격자들은 "이 모든 것이 속임수, 사전에 몰래 획책된 장난이다. 그런데, 봉사로 태어난 사람이 단지 몇 분 만에 다른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 학식이 높은 바리새인들은 "이것은 올바른 일이 되지 못한다. 공인되지 않은 안식일의 병 고침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고 생각한다.
    부모를 심문하고 사건을 거의 범죄 수준으로 취급한 조사가 이뤄진다. 아들은 실제적으로 봉사였고 어떻게 치유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다.

    특이한 일은 '아무도 병 나음을 얻어 눈을 뜬 사람과 더불어 기뻐하지 않고, 모두가 한결같이 소위 국이나 반찬에서 단지 머리카락을 찾으며 예수님에게서 율법을 어기는 일을 찾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공식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은 '어떻게 하나님 사랑이 삶 속으로 밀려오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아주 나쁜 일을 염두에 두는 사람은 신뢰하고 믿는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늘 거듭해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만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형상을 통해 어떻게 조작될 수 있는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마술사가 물건을 순간적으로 없어지게 했다가 다시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그 실례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뒤에 속임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뉴스나 기록영화도 이에 속할 것입니다. 사전에 편집된 것이라서 단지 보여지는 것만 볼 뿐이고, 실제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속임수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를 조작하시지도 않습니다. 믿음은 연분홍 색안경이나 일어나는 모든 것을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전 존재를 볼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것, 우리 세계관에 적합치 못한 사건까지도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초청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요 9, 13 - 23   계 19, 4 - 9  (지난 묵상링크)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요 9, 18)

   

 

배경 찬송은  "믿는다면"입니다.

 

  6 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