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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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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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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와
자매 마르다는 바르게 행동한다. 이들은 병든 나사로로 인한 걱정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안전하게 이들은
이것을 이웃에게 알렸다. 서로 나눠지는 고통은 어쩌면 늘 절반의 고통만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걱정을 함께 나누는 일이 얼마나 홀가분하게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예수는 어떠한가? 예수는 이 소식을 겉으로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받아들였다. 예수는 친구 나사로와 두 자매를 돕기 위해 즉시 채비를 차리고 가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머무시던 곳에 이틀 동안 더 계신다. 예수님이 적절한 때라 생각하시는 순간에서야 마침내 떠나신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예수님이 치유받기를 원하는 사람보다 더 깊이 바라보시기 때문이다. 예수가 행하시거나 방치하시는 일은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그리고 우리에게로 향한 사랑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독일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면, 광고를 하고 난 뒤에 중보 기도 시간에 일일이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도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교구에서 돌아가신 분들, 병상에 누워 있는 분들의 이름을 부른 뒤에 사자들의 영혼과 아픈 자들의
완치를 위해
기도하는 순서입니다. 이 기도가 끝난 뒤에 할머니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사님, 저에게 감사할 기회를 주실 수 있는지요?"하고 간청했습니다. 목사님은
이 할머니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이 요구를 기꺼이 허락하자 할머니는
"저를 위해 그동안 기도해 주신 것, 심지어 오늘 예배 중에도 중보 기도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다들 보시는 것처럼, 저는 다시 건강하게 어제 저녁에 마침내 퇴원했습니다"고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요 11, 1 - 10 벧후 1, 2 - 11 (지난 묵상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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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요 11,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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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찬송은 "욥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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