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을 볼 수 있는 나이

 

2014년 6월 4일

     

 

    잉태한 여인이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 어떻게 될 것인가?"하고 자문한다. 아픈 사람은 친구들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그들이 여기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지"하고 생각한다. 남편이 부인을 잃고 둘이서 함께 했던 시간을 기억한다.
    미래, 현재와 과거, 즉 우리의 인생은 기쁨과 아픔 속에서 시간의 교체 아래 있다. 우리들이 바로 어제 기뻐했던 일이 내일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된다. 아직도 남아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비록 그가 과거의 인물일지라도, 예수님의 대화 상대자는 아브라함의 믿음 안에서 발판을 찾고 있다. 하지만, 시간과 영원이 예수 안에서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가 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호되어 있다. 왜냐하면, 모세에게 과거에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 (출 3, 14)고 약속하신 분을 예수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무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셨다. 그 이후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길, 진리와 생명으로 존재하신다.

    독일에서는 오십 번째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이제 그는 아브라함을 보았다"란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가 아직 나이 오십도 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전에 죽은 아브라함을 보았다' (56 - 57절)고 주장했었던 말에서 "오십이 되는 사람은 아브라함을 볼 수 있게 된다"는 반전을 유출한 것입니다. 나이 들어서 생일은 우리들에게 생의 제한성을 깨닫게 해주는 일에 속합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리의 무상함을 더 분명하게 감지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우리 인간들은 피고 지며 오가는 것들, 그리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원함에 감싸여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이 얼마나 선한지 모릅니다. 아직 힘과 열정이 왕성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입니다. 불신앙을 극복하고 아브라함을 볼 수 있는 성숙한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요 8, 46 - 59   고전 10, 16 - 17  (지난 묵상링크)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 8, 58)

   

 

배경 찬송은  "아브라함의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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