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수 아닌 빛을 반사하는

 

2014년 6월 7일

     

 

    다시 보게 된 장님은 그 당시 종교 권위에 맞서 "예수가 죄인이라고? 하나님이 죄인의 간구를 듣지 않고, 단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소리를 듣는다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예수님의 간구로 내가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가 죄인일 수 없고 여호와가 예수와 함께 예수 안에 거하신다. 이 사건은 유일한 일이다"고 재치있게 반박한다.
    이렇게 간단하고도 설득력 있게 치유함을 받은 자는 예수께 신앙을 고백한다. 그런데, 최상의 반박은 적대자들이 거부하는 자신들의 자세로부터 멀어지도록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이 엄격한 계명의 자세로 살아야만 하는 시나이에서의 여호와 하나님 계시에 충실해야 함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이 하나님의 행하심이고 아닌지'를 또한 확인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것은 독선만으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우리가 옳다'고 인정받기 위한 반론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관심이 더 중요하다면, 그리스도인들 상호 간에 놓인 수많은 믿음의 알력들은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만다.

    소위 학식이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복잡하게 기술되는 내용을 때로는 평범한 사람들이 바로 핵심 쟁점으로 가져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리스도인을 알아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신학적으로 논리적인 장황한 대답에서부터 "불신지옥이라는 예수쟁이 냄새를 풍기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답을 나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해 보다 쉽고 명확하게 표현한다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는 사람이다"란 답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빛나기를 원하고 우리 인간들이 살고있는 세상에서 환하게 빛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다 반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요 9, 24 - 34   약 2, 14 - 26  (지난 묵상링크)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요 9, 32)

   

 

배경 찬송은  "해같이 빛나리"입니다.

 

  6 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