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할 수 없는 고향

 

2014년 6월 17일

     

 

    두 자매 중에서 명백하고 분주한 마르다는 잘못된 우선 순위를 정하는 한 사람으로 자주 불평을 했었다 (눅 10, 38 - 42 절). 하지만, 나사로가 죽자 집이 초상집으로 바뀌었을 때,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았다.
    마르다는 모든 것을 그대로 남겨둔 채로 예수를 마중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는 생명이다"고 말씀하실 때,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예수님의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위해 우리가 확신에 차 찾아갈 수 있는 곳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선한 일인지 모른다. 이별과 공허가 우리를 덮쳐오게 될 때, 우리의 한탄과 분노를 멈추며 여기 계시고 가까이 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선한 일이다. 아주 떠들썩하게 베다니에서 일어났던 일이 우리에게서 아마도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렇게 우리는 또한 생명의 이름 안에 그곳에서 개입하는 분을 체험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죽음이 최후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주십니다. 우리 인간들은 아름다운 지구란 별에서 손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아름다운 것들로부터 이별해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기꺼이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고, 시간의 마차를 계속 타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정해진 수명이 언제인가는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름을 받아 갈 나라는 소위 "잘 알려지지 않은, 상상할 수 없는 미지의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알아보게 될 단 하나의 음성만 있을 분입니다. 왜냐하면, 이 음성 즉, 선한 목자의 음성은 우리에게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알아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요 11, 20 - 27   요 8, 21 -  30  (지난 묵상링크)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 25)

   

 

배경 찬송은  "본향을 향하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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