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2014년 6월 11일

     

 

    목(회)자란 직업은 보살핌, 책임지고 희생할 각오를 위한 상징이다. 자기 스스로 목자였던 다윗은 잘 알려진 비교를 서술하고 여호와에 대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 23편)란 유명한 시편을 노래했었다. 이 시편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위로했었던 시편 중에 하나이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스스로 연관시키고 '양들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버리겠노라'고 말씀하시면, 이것은 단지 직업상 위험을 암시할 뿐만이 아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지키고 방어한다. 예수님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신다. 단지 당신의 사랑으로써만 우리에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정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목자이시다.

    왜냐하면, 스스로 미화하지 않고 예수님은 죽음으로 나아가시며, 이것을 통해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격을 받고 우리 자신들의 각종 문제와 두려움으로 쫓기게 되면, 몸소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 없이, 예수 그리스도는 몸소 우리 앞에 내어놓으신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가 특별한 관계를 가지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와 더불어 연합해도 된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선한 목자"를 가지고, 소위 성공한 목회자로서 잘 알려진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이 "과연 선한 목자에 해당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어쩌면 세상적 외형적인 기준으로는 그야말로 성공한 목회자일 수 있지만, 과연 이들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일까?"란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소위 법적 문제까지 확대되는 일부 대형교회는 십일조 헌금의 잣대를 가지고 심지어 양의 자격 기준을 정하고자 하는 추세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한국교회의 움직임에는 '양을 물질적 증식이나 물질적 자원의 대상'으로 볼지언정,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목자의 사명'은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선한 목자는 예수님의 몫이다'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엄격한 사실은 "양을 위해 먹이고 목숨을 바칠것처럼 교회로 초대해놓고서 목자를 돼지처럼 살찌게 먹여달라"고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는 "거짓 목자, 삯군 목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바로 알고 깨달을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요 10, 11 - 21   눅 11, 33 -  41  (지난 묵상링크)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 11)

   

 

배경 찬송은  "선한 목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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