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이 써버린 기회

 

2015년 9월 29일

        

    그 당시에 믿음의 공동체의 노골적인 위기가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런 연관 속에서, 유다는 소위 성경 외경에 속하는 "에녹기"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경고를 상기시키고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이날에 하나님과 함께 의로운 자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심지어 형벌에 대해 말해지고 있다. 여기서 나중에 명예 회복에 대한 희망이나 심지어 경건한 복수심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적 경고들이 근본적으로 자기 사람들에게 겨냥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것에 덧붙여 이 곳에서 말해지는 "'주님'은 당신의 첫번째 오심에서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선적인 사람들을 꾸짖었던 하나님과 결코 다른 분이 아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긍휼" (21절)에 대해 짧게 강조하고 있다. 이것을 고수하는 사람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다툼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젓하게 기다릴 수 있다.

    오늘 본문에 주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 미래의 시점에 다가올 "심판"을 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외에도 흔히들 과거사와 연관된 "심판"을 떠올리게 됩니다. 종전 70주년을 도처에서 기념했지만, 과거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다시 되살아나는 군국주의나 침략주의의 망령과 그리고 그런 세력에 부역하고 수많은 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거나 괴롭힌 무리들이 오히려 그 죄악을 미화하거나 조작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나 후세대에게 이런 가해자들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도대체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이 질문에 흔히들 "그들은 단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다"는 변명을 늘어놓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들 가해자들의 고약한 실수를 수정할 것인지 아닌지를 기대하며 인내했습니다. 그런데, 재판 절차나 필연성, 책임, 화해와 정의를 위해 엄하게 다뤄야 하는 말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현재 인간적 심판은 비록 실패했지만, 주님 오실 때에 받아야 할 심판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유 1, 1- 16  마 27, 59 - 54 (지난 묵상 링크)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유 1, 14 - 15)

   

   

 배경 음악은 "평화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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