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자유

 

2015년 9월 5일

       

    실망의 어조는 결코 건성으로 들어넘길 수 없다. 갈라디아인들을 자유롭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직 자신들의 삶에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이 복음이 그들의 미음에 이르지 않았고 그들 삶을 새롭게 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이제 복음이 모든 것을 해치는 사람들에게 스며들었다. 그때문에 바울은 자기 서신의 가장 열정적인 내용에서, 동시에 서두에서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절)고 분명히 하고 있다.

     다른 복음?! 이것은 우리 시대에도 또한 상당수 존재한다. 그 당시에도 "너희가 이런저런 규범을 지키면, 너희 삶은 구원을 받았다"라고 강조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혀 말씀하시지 않았던 수많은 조건들이 즐비했었다. 기쁜 소식인 복음은 좀 다른 것이었다. 우리가 기품이 있고 모든 것을 바르게 행하였으며 충분히 제시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다. 복음은 죄인들에게 은혜롭고 아무런 조건 없는 무죄 판결인 것이다. 여기에 그 어떤 협상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은 해도 되며 해서는 안되는지' 대한 수많은 금기사항들이 행동을 제한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집에서 고스톱은 물론이고 주일날 돈으로 무엇을 구매하거나 차를 타고 예배를 가는 일까지 금지했습니다. 복음이 자유롭게 하는 능력으로 빛나고 시야가 실제로 중요한 것, 은혜로운 무죄 판결을 위해 활짝 열리게 되는 날까지입니다.
     참된 복음은 "우리 자신이 품위 있고 모든 것을 '올바르게' 행했고 충분히 제시할 수 있는지" 두려움을 더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은혜로운 복음을 믿는 일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 이외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참된 복음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갈 1, 1 - 9  눅 22, 39 - 46 (지난 묵상 링크)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갈 1, 6)

   

  

배경 음악은 "다시 복음 앞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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