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신을 신고

 

2014년 3월 26일

     

 

   유다가 이미 나간 뒤에 (13장 30절), 제자들 가운데 이별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이 가득하게 되었다. "서로가 헤어어지는 일"은 원래 "걱정을 가진다"로 번역되는 그리스 단어의 뜻을 의미한다.
    독일어로 "의심"이라는 단어도 똑같이 그러하다. 여기서 이중으로 이 분위기를 간파할 수 있다. 걱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내적으로 상처받은 사람이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빌립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분리되지 않은 공동체에 대해서 "빌립아! 단지 나만 바라보아라. 내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떨어지지 않고 하나이면, 나와 함께하는 너의 삶도 하나님께로 가게 된다. 나아가야 할 길을 걱정하지 말라! 내가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아버지 하나님이 네가 필요한 것을 너희에게도 베푸실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아신다. 두려워 말라!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면 너희도 또한 내 형제자매요 우리와 더불어 하나이다. 너는 이 무리에 속했고 이 공동체에 너의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해도 된다"고 말씀하신다. 빌립처럼, 오늘날 예수를 믿고 고백하는 우리들도 또한 그러하다.

    기차를 타며 샌들 한 짝을 잃어버린 간디는 출발하기 전에 나머지 한 짝마저도 벗어 기차 창문 밖으로 던진 일화가 있습니다. 동행하던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 질문하자, 간디는 "왜 내가 샌들 한 짝만을 신고 다녀야 하는가? 양쪽을 발견하는 사람이 샌들을 신고 다닐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일에 대한 두려움에 매달리는 일이 곧 간디가 벗어 던진 샌들과도 같을 수 있습니다. 걱정 근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일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굳게 믿을 수 없었던 것처럼, 두려움은 크고 불확신이 제자들의 마음을 파헤쳤던 것입니다. 아무 것도 붙잡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 맡길 때만, 우리는 믿음의 신을 신고 우리의 길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아 요한복음과 함께 예수님의 고난에 동행해 보고자 합니다. 마음속에 열심히 생산하는 "걱정 공장"을 마침내 닫고 예수님의 족적을 따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요 14, 8 - 14 막 9, 38 - 47   (지난 묵상링크)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요 14, 10)

   

 

배경 음악은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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