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길 아니면 사망의 길

 

2016년 9월 15일

         

  

    왕의 간구는 이 사건에서 살아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회개에 대한 것보다는 오히려 뻔뻔함을 자아냈다. 왕과 신하들은 '하나님이 적들의 군대 앞에서 예루살렘을 구해내실' 어떤 기적을 바랐다. 왕은 아주 기꺼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팔짱 끼고 바라보고 싶었다. 또한 적절하게 거절되면서 하나님의 응답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대답은 적어도 생명을 구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가망이 없기 때문에, 성을 비워 적에게 넘겨주고 이것으로써 많은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길은  왕에게 불편하고 체면을 구기는 일과 결부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왕에게 정확한 결정을 내리고 스스로 책임지도록 용기를 주셨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것을 기대하신다. 삶에는 늘 생명을 위한 길과 죽음을 위한 길이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생명의 길은 우리 스스로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걸음걸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본문이 명확하게 제시하듯이, 세상을 살면서 인간들은 언제나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선과 악, 생과 사, 평화와 전쟁, 화해와 갈등, 대화와 다툼, 신뢰와 불신 그리고 이익과 손해 등이 그것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 자신에게 자유의지는 물론이고 선택할 권리가 늘 주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이 선택을 위해 하나님께 굳이 기적을 간구할 필요조차도 없는 간단한 일에 속합니다.
    지난주 한반도에서는 두 개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는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인공지진이고 다른 하나는 경주에서 실제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역대 최강의 지진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는 비상식적 조치와 국민의 안전을 도모해야 할 정부는 재난에 부실한 대응을 했습니다. 또한 멈출 줄 모르는 북한 핵 도발에 맞서 외교와 대화로써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모색하기보다는 초강경책으로 그야말로 쌍방간이 치킨게임을 고집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수많은 수식어를 동원해 서로의 입장을 강변한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길에서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풍성한 한가위를 맞습니다. 사망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렘 21, 1 - 14   막 9, 1 - 10  (지난 묵상 링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렘 21, 8)

   

   

 배경 음악은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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