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율법보다 나은 사랑

 

2010년 10월 11일

 

   바울의 말은 우리가 삶 속에서 "법을 어기게 되면, 응당의 결과가 뒤따른다"는 아주 중심적이고도 보편적인 체험을 우리에게 기억케 한다. 대한민국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주 보게되는 '뻔뻔스럽게 사과하며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로 고위 공직자가 되어 법치주의를 위해 목청 높이는 일은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의 예'이며 보편적인 것이 결코 되지 못한다.
    오늘 말씀에서 이와 비슷하게 바울 역시 "갈라디아 교회 여러분들이 나를 믿지 못한다면, 그러면 유산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훌륭한 업적들이나 후한 성금이나 헌금들로 스스로 이것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자유함을 위해 이미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은혜, 자비와 사랑을 위한 결정인 것입니다"라고 주장한다.

    사도 바울의 말은 "도대체 어디에다 우리 인생의 기본 바탕을 두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하도록 한다. 우리가 삶 속에서 "만일...하면, 그때는"이라는 결과에다 우리 스스로의 공로를 중시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선물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가? 이 두가지를 다 소유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산을 모두 탕진하게 될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의 언약으로만 살고자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유산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샹송 중에 "그대의 미소처럼 그대의 삶이 그러하다면, 나는 기꺼이 그대를 다시 보기 원합니다"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그대의 미소가 약속하는 것을 유지한다면, 그러면 그대에게 관심있다'라고 말한다면, 그렇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수많은 눈물과 삶의 다른 부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아무도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숨길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어떤 법도 자유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자유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개념입니다. 성경에는 자유와 율법은 상이한 기본판단으로 존재합니다. 율법은 "나를 지키고 부단히 노력하라!"고 말하며, 자유는 "나는 너에게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바로 이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든 세상적 율법보다 더 나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복된 새로운 한주가 되시길 ....  샬~~~롬

    3, 15 - 18   살전 4, 9 - 12  (지난 묵상 링크)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갈 3, 18)

   

 

배경 찬송은 설경욱의 "축복의 사람"입니다.
(7월 7일부터  배경 찬송의 가사가 제공됩니다. 해당 찬송 장이나 제목을 클릭하세요)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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