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하기보다는 고백할 수 있는

 

2016년 3월 22일

        

  

    그 당시 베드로는 대제사장 집 뜰에서 어린 여종에게서 "당신은 예수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느냐? 당신도 나사렛 예수와 같이 다녔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궁지에 몰려 두려워하고 혼란에 빠졌으며, 마침내는 '예수를 전혀 모른다'라고 부인한다.
    한평생 베드로는 이 장면을 잊을 수 없었고 자신의 시야에서 이 장면이 없어지지 않았다. 마가가 자기 복음서를 쓰기 시작했을 때, 이렇게 베드로는 몇 년 뒤에 동역자에게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확실히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의 가장 큰 고난 가운데서 그냥 내버려두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늘 거듭해서 아픔을 느꼈다.

    하지만, 예수님 부인은 그의 마지막 말이 결코 아니었다. 단지 며칠 뒤에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이 순간부터 모두에게 "나는 이 사람을 안다! 나는 그를 뒤따른다"라고 말했다. 부인이 베드로의 마지막 말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할 수 없다! 베드로가 단지 몇 주 뒤에 모두에게 "예수님이 살아계시며, 그는 주님이시다!"라고 모두에게 선포하는 일은 얼마나 좋고 선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가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어떻게 답하는가?! 우리는 예수님 편에 서는가?!

     예수님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 , 34)고 말씀하셨지만, 성령 안에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화평을 구하며 화평한 가운데서 서로 더불어 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예수님 안에서 믿음 고백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이 비록 복음을 담대하게 세상에 전하지 못할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하는 일에 더 이상 두려움을 가지지 않게 되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우리 자신이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고백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막 14, 66 - 72   욥 38, 1 - 11 (지난 묵상 링크)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막 14, 71)

   

   

 배경 음악은 "예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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