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영혼의 시력

 

2016년 3월 15일

        

  

    바디매오 이야기는 신약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우리들 모두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우리는 볼 수 있기를, 예수를 볼 수 있기를 원한다"라는 동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경 거지가 예수님에 대해 들었고 예수님을 향해 소리친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외침을 듣게 되셨고 그를 부르신다. 그곳에 바디매오가 서 있었고 예수님께로 데려가게 된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 그에게 "내가 너를 위해 행하기를 원하느냐?"고 질문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때, 바디매오는 이미 오랫동안 자기 마음속에 깊은 소원이 무엇인지를 다 말한다. "랍비여, 내가 보게 되기를 원하나이다. 선생님이여, 어떤 사람이 내게 시력을 줄 수 있다면, 주님이십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소경은 자기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그에게 이미 내적으로 눈이 열리게 되었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부터 그는 예수님을 뒤따랐고 심지어 여리고에서 예루살렘 성까지의 길을 뒤따랐다. 그가 예수님께 신실하게 머문다면, 또한 바디매오가 된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소경이 자신의 성경과 마주하고 시편에서 한 단어, 한 단어씩 더듬어 읽는 장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손이 아직 여전히 빛을 보지 못하는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 36, 9)라는 말씀을 더듬게 되면, 그는 마음속으로 도대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혹은, 그 말씀이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시 97, 11)이라면, 그에게는 단 한번도 빛이 뿌려지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시 139, 11)고 기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분명 외적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 '눈이 먼 상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내적으로 볼 수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결국, 이 소경은 좋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손가락 끝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 105)라는 말씀을 더듬는 것처럼, 그는 조용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주님의 말씀은 나의 흰 지팡이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그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 4)란 말씀을 이미 읽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영혼의 시력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막 10, 46 - 52   유 1, 1 - 25 (지난 묵상 링크)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막 10, 49)

   

   

 배경 음악은 "눈을 들어 주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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