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2016년 6월 18일

        

  

    도대체 어떻게 오늘 본문을 이해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말은 마치 변색을 잘하는 카멜레온처럼 그렇게 들린다. 도대체 왜 바울은 필요에 따라 말과 생각을 바꾸는 것일까?! 바울이 이것으로써 "사람들을 얻고자 하는 일"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하지만, 바울에게 이것은 선포, 선교와 이를 위한 기본적 원리의 문제이다. 그런데, "얻는다"라고?! 이것은 여기서 복권이나 상업적 이윤과 전혀 관계가 없다. 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을 위해 발견하게 되면, 그것은 모든 것을 비췰 수 있는 어떤 이득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단지 감동시킬 수 있으면, 하나님은 기꺼이 모든 오해와 굴욕들을 감내하신다. 그 때문에 바울도 역시 아주 다양한 관점들에 기꺼이 관여할 준비가 되어있다. 예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얻을 수 있다면, 바울은 두려움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역하게 되면, 우리들 또한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충분치 못하게 성공할지라도, 우리는 모든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은 대화 중에 자주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엄청난 말을 도처에 사용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들끼리도 "나는 자기를 위해 기꺼이 죽을 거야! 자기 또한 나를 위해 죽을 수 있지?"라고 다짐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죽는다"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자기 속마음 전체를 내어 준다"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음은 바로 이런 뜻에 속할 것입니다. 물론 그런 상황을 맞을 때, 주기철 목사처럼 순교를 기꺼이 감당한 믿음의 선배들도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 사랑에 대한 복음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고전 9, 19 - 23   요 19, 25 - 27  (지난 묵상 링크)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 9, 22)

   

   

 배경 음악은 "주님께로 나아가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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