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경계선 - 동성애

 

2016년 6월 8일

        

  

    초등학교 시절에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는 일이 자주 있다. 선생님이 처음에는 친절하게 경고한다. 그런데 더 시끄러워지고 경고가 아무런 소용이 없으면, 결국은 교실 문 앞에다 두 손을 들고 벌을 세우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 이것을 납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업에서 쫓겨나는 일을 심한 체벌로 여겼다. 그런데, 잘못한 학생이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난 뒤에 다시 원위치하게 되면, 예외 없이 항상 분명하게 변화된 자세를 볼 수 있었다.

    바울 사도 역시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다. 믿음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일과 상호 관계를 헤치는 삶은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우상 숭배, 음행, 탐욕과 각종 사소한 범죄와 다툼 등은 형제자매들 가운데 전혀 찾을 것이 없어야만 한다. 바울이 이러한 구분된 경계를 긋는 일이 어쩌면 심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믿음의 공동체는 위치를 지켜야만 한다. 이것으로써 공동생활이 와해되지 않고 각 개인이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인식하게 된다.

     바울 사도가 그 당시에 고린도 교인들에게 분명한 선을 그은 것처럼, 요즘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동성애"와 "이슬람" 문제로 그 경계선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경각심은 물론 위기의식으로 주위가 소란스럽기까지 합니다. 한편으로는 "왜? 이미 있는 수많은 '월장'은 그냥 외면하다가 새삼스럽게 저 문제만?"하는 의아심도 없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적, 도덕적 잣대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집단적으로 "2MB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모든 신앙적, 도덕적 잣대를 버리면서 '경제살리기'란 "제2의 신사참배" (?)를 선동했던 부끄러운 일이 얼마 전 일이며, 부패한 정치세력에 편승해 시시때때로 흔들리는 "개독교"가 되고자 스스로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Franziskus 교황이 2014년 6월 마피아의 핵심 지역에서, "마피아처럼, 잘못된 길을 선택한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공동체 안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미 파문되었다"라고 선포한 적이 있고 성찬식에 참예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와같이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신앙적 태도가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에 속할 수 있고 어떤 신앙적 자세가 아닌지' 확고하게 하는 분명한 선을 필요로 합니다. 동시에 과연 한국 기독교가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이런 분명한 자세를 과거 역사에서 취했었고, 동시에 현재 모든 신앙생활에 선을 긋고 있는지 자문하며 회개와 각성부터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로서 구분된 삶과 신앙 자세를 점검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고전 5, 9 - 13   왕상 3, 5 - 15  (지난 묵상 링크)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든 그런 자와는 아무 것도 하지말라 (고전 5, 11)

   

   

 배경 음악은 "아름다운 마침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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