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한 주님의 얼굴

 

2016년 7월 14일

        

  

     여론 조사에서 '인간들 삼 분의 일 정도가 사후 세계를 믿고 삼 분의 일은 무엇이 오게 될지 확실하지 않으며, 나머지 삼 분의 일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헛소리로 여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고린도에서도 부활에 대해 다투게 된다. 바울은 믿음의 논리에서 "죽은 자의 부활 없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라고 증거한다. 이것은 소망이 없음을 뜻한다. 인간의 미래에 대한 문제이자, "모든 이성보다 높은" 소망에 대한 문제이다.

     큰 압력과 함께 죽음의 극복에 대한 메시지가 오늘날도 그 당시처럼 두려움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소리쳐 부른다. 바울과 더불어 전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믿을 수 없다. 고난, 고통, 질병, 불의와 전쟁이 최종 결정권을 가졌음을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이후"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최종 결정권은 하나님이 친히 가지고 계신다. 새 생명의 비밀은 세상의 부조리 속으로 들어와 비친다.

     예수님은 우리를 바라 보십니다. 비록 우리가 이것을 망각할지라도, 이런 주님의 주시에 의해 우리들은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존엄을 헤치게 되면, 그 때는 주님의 고난 속에서 일그러진 인간의 얼굴을 인지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못 이룬 삶과 경직된 관계들에 대해 아픔을 느끼면, 그 때는 우리는 주님의 바라보심 가운데서 치유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각종 인간적인 몰락에 두려워하게 되면, 그 때는 이 세상에서 인자하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빛 가운데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고전 15, 12 - 19   빌 1, 12 - 18  (지난 묵상 링크)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고전 15, 13)

   

   

 배경 음악은 "괴로울때 주님의 얼굴 보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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