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가운데서 잠잠하라

 

2011년 4월 25일 

  

   

    다윗이 사울의 통치 아래 감내했어야만 했던 모든 무고들과 추적들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이 죽은 후에 승리가를 드높히지 않는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부당 이득자의 관점에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심하게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 사실에 분노하고 실망하며 슬퍼한다.
    또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대단하게 출발했던 사울을 애도함과 동시에, 친구 요나단을 위해 애통한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 다양한 대중매체의 시대처럼, 나쁜 소식은 결코 좋은 소식이 될 수 없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경악할 일이었다. 이 전쟁에서도 단지 패자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파국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얻게 된다. 물론 이 순간에 이런 희망은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각종 패배들은 우리가 단순히 한쪽으로 밀어놓고 무시하지 못할 슬픔으로 채운다. 패배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우리 자신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아픔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안목에서 볼 때, 극히 미미한 단편일 뿐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캄캄한 밤에 사진기의 후레쉬로 큰 건물을 찍으려고 노력합니다. 아무리 전문적인 후레쉬라도, 어두운 밤에 카메라로 큰 건물을 찍는 일은 실제로는 사진기의 능력 밖에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찍고자 기꺼이 시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을 가지고도 이와 비슷한 일을 반복합니다. 물론 "영적 후레쉬"도 특정한 일들만을 밝힐 수 있는 제한된 가능성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사진기로 찍고자 하는 대상들이 너무 큰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렌즈에 잡힐 적당한 시야를 위해 좀더 멀리서 찍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면, "후레쉬 빛"이 더 이상 찍으려는 대상에 미치지 못하게 됩니다. 영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제한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후레쉬' 대신에 오히려 '삼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잠잠해야 하며, 인식하기를 바라는 것이 자체의 빛을 발하며 보이도록 기다려야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안에서 잠잠하며 평안한 가운데 여는 복된 새로운 한주간이 되시길 ....  샬~~~롬

   삼하  1, 17 - 27   14, 15 - 21  (지난 묵상 링크)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삼하 1,  27)

   

 

배경 찬송은 '주님의 사람들'의 "나의 나 된 것은"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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