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접한 여인을 찾는

 

2011년 4월 18일 

  

   

    사울은 큰 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더이상 그에게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엔돌 En-Dor에 사는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내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는데, 이것으로 그는 신비적인 영역에 놓이게 된다. 사울은 자신이 이전에 법으로 금지시켰던 일을 스스로 행하게 된 것이다.
    사울이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어 들은 메시지는 결국 무섭고 놀랄만한 '사형선고'였었다. 그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닥칠 재난 앞에 탈출구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각종 간구들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로지 여호와만이 생명의 근거를 손에 쥐고 계신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삼상 3, 18)는 말씀처럼, 인간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일들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와 더불어 말씀하셔야만 한다.

    사울의 슬픈 이야기는 우리의 안일한 양심을 흔들어 깨우고자 한다. 탈출구가 전혀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응답을 찾고자 하는가?!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아니면, 다른 어떤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더불어 말씀하시면, 여호와의 미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자, 박수무당을 찾아가 답을 찾고자 하는 사울을 만나게 됩니다. 사울의 이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이제까지 받아 누리는 은사와 축복으로 갖가지 서원을 말했던 우리는 은사와 축복과 더불어 애석하게도 마귀의 종노릇으로 쉽게 빠져 들어가곤 합니다. 말씀과 기도 중에 늘 깨어 있지 않으면, 남녀노소, 빈부귀천 그리고 지위의 높고낮음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는 배신을 일삼고 어둠의 자식들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신구약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주여! 우리를 시험에 들지말게 하옵시고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는 고난주간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고난과 우리의 허약한 배신의 영을 점검하는 복된 새로운 한주간이 되시길 ....  샬~~~롬

   삼상  28, 3 - 25   15, 9 - 17  (지난 묵상 링크)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삼상 28,  16)

   

 

배경 찬송은 기현수의 "위로하소서"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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