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내

 

2011년 4월 21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에 대해 조롱꺼리로 만드는 비웃는 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뜻과는 정반대로 "남은 구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는 진리의 증인들이 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이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 가운데 거하기 때문에, 바로 그들 스스로가 도울 수 없는' 예수님 사랑의 속성에 속한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이 도움을 청했을 때, 그녀의 편에 서서 전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온전히 그녀를 돌보셨다. 병든 자나 절름발이를 고치실 때면, 예수님은 온전히 그들 가운데 계셨으며 자신을 전혀 돌보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에게 축복하실 때에도 온전히 어린아이들과 함께 하셨던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도왔지만, 자기 스스로는 도울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전 삶에 대해 붙여야 할 제목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고난을 하소연하는 베드로에게 아주 노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 안에서 명백하게 되는 "사랑의 여정"은 신성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길은 하나님의 뜻안에서 다른 이웃들을 위해 존재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기 스스로를 결코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바하 J. S. Bach 의 "마태 수난곡"에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승리한 영혼의 음성으로 소프라노가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에게 선을 행하셨다. 눈이 먼 자에게는 볼 수 있는 얼굴을 주시고, 절름발이에게는 걸을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주시고, 귀신을 내쫓으셨다. 애통해하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죄인들을 가까이 하시고 받아들여 주셨다. 그 이외에는 예수님은 아무 것도 하시지 않으셨다"고 노래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셨기 때문에 구세주 예수는 기꺼이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에 대해서 전혀 모르십니다. 영원한 불행과 심판의 벌도 결코 우리 영혼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사랑으로 십자가의 고난조차도 묵묵히 감당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고통을 생각하며 동행하는 수난절 한복판의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27, 31 - 44  고전 11, 23 - 26  (지난 묵상)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 27,  42)  

   

 

배경 찬송은 기현수의 "주님의 사랑으로"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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