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을 지고 결코 백년대계는

 

2011년 4월 9일 

  

   

    사울의 마음 속에 어떻게 각종 파괴적인 생각들이 뒤섞어 엉기게 되었는지 그리고 다윗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요나단과의 우정은 더 불신의 낭떠러지로 내몰게 된다. 왜냐하면, 요나단은 이 우정을 지키기 위해, 친아버지인 사울에 맞서 행동해야 할 만큼 댓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은 과연 친구 요나단을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 두사람이 수습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구함받을 수 있을까? 두사람은 자신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께 서약하는 말로써 여러번 맹세한다. 이들은 "여호와가 두사람을 자신들의 불신 앞에서도 구해 낼 수 있는 유일하신 분"임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어렵게 파악할 수 있는 각종 관계들의 갈등 속에서도 주님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들도 다윗과 요나단처럼 행동하며, 우리 자신들의 부정적인 감정 속에도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다. 감사하고 다행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들의 심령 안에서 불타오르는 위험한 격정들을 잠잠해지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 앞에서 맹세하는 다윗과 요나단의 아름다운 우정을 접하게 됩니다. 이들 둘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며 변치 않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약속하는 것이 쉽게 깨어진다면, 결국 그런 사람과는 어떠한 관계도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임기 중에 있는 2MB 장로는 "백년대계"라는 말을 앞세워 "지난 대선에서 표심때문에 그렇게 공약 公約했을 뿐이다" 내지는 "그런 공약을 내건 적이 없다"는 말로 공약 公約을 '공약 空約' 내지는 '백지화'하며 신뢰와 믿음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인상을 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이런 정치적인 자세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수정하지 않는다면, 우리 세대가 후세대들에게 '백년대계'를 미래에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불신과 의심을 고스란히 물려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불신과 의심을 종식하고 신뢰를 중히 여기며 회복할 수 있는 지도자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삼상 20, 1 - 23  욥 7, 11 - 21  (지난 묵상 링크)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삼상 20,  3)  

   

 

배경 찬송은 박형근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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