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름 대신에 내세워야 할 이름

 

2012년 2월 7일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시는 가운데는 더 이상 죽음이 최후의 말일 수 없다. 예수님의 전권은 죽음으로부터 전능을 빼앗아 버린다. 예수님이 소란을 피우는 울부짖음과 마주하셨을 때, '이 아이가 전혀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잠들었을 뿐이다'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우선 단지 조롱과 경멸만을 마주 하시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 속에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도 '사자
死者'들을 단지 간단하게 "죽은 자"로서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사자들이 "주님 안에서 평안하게 죽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화평가운데 안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사자들은 자신들이 영생으로 일깨워지게 되기를 기다린다.

    예수님을 통해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도 마침내 화평이 찾아오게 된다. 그녀의 부모는 예수님을 정적 속에 소녀가 누워 있는 방 안으로 인도한다. 예수님은 소녀의 손을 잡고 사랑이 가득한 음성으로 "달리다굼 - 일어나라!"고 명령하신다. 이렇게 소녀의 부모는 예수님의 손으로부터 딸이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유럽 대부분 나라들이 이미 '다민족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종교적인 상징이 어느정도까지 공개적으로 허락되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늘 새로이 거듭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로 시작되는 스위스 헌법 전문에 대한 텔레비젼 토론 프로그램은 아주 흥미로운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론에 초청된 인사들 중에는 '헌법 전문에다 하나님을 거론 하는 일을 당연하게 비판할 것'이라고 여겨진 한 저명한 언론인도 있었습니다. 헌법 전문이 "하나님 이름으로"라고 시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행자의 질문에, 그는 "그럼 도대체 어떤 이름으로?"라는 반문으로 답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의무를 지우도록 말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결코 말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며, 전능은 결코 인간의 손에 속한 것이 아님을 고백해 봅니다. 그런데, 이런 일과 관련해서 한국 교회들은 어떠한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대부분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 대신에 '목사의 이름'을, 십자가 대신에 '기름이 번지르르한 목사의 두상'을 내걸기에 넋을 잃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무슨 일에든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고자 하는 시험에 빠지지 않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막 5, 35 - 43   약 3, 13 - 18  (지난 묵상 링크)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막 5, 39)

   

 

배경 찬송은 "Wo ich auch stehe"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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