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던져졌지만 상실되지 않은

 

2016년 10월 6일

         

    그 당시에 일어난 일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수년 동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 경고했었다. 이것을 위해 예레미야는 항변, 폭력과 감옥행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 일은 그 자신의 사명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들이 회개하고 우상숭배를 멀리하며, 잘못된 희망을 품지 말고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다시 나아오도록 하기 위해 분투하신다.
하나님 심판의 엄격한 선포는 아무 것도 바꾸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잿더미에 놓인 지금 순간에도 예레미야는 계속 경고해야만 했다. 사람들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 그들은 다시 눈이 멀어 이방신인 하늘 황후 "이스다롯 Ishrar"을 섬긴다. 이렇게 예언자는 곧 귀향할 것이라 믿는 모든 희망을 수포로 돌려야만 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수많은 우상들 아래 결코 변형이 아니라, 우리 전 삶과 생각에 속한 유일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매일 여호와 하나님께 의식적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철학자들끼리 어떤 개념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이따금 마치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 Heidegger는 자신의 표현에서 인간적 삶을 "존재에 내던져진 상태"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인간은 몸소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단지 삶 속으로 내던져지고 죽음을 통해 피할 수 없이 제한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에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최선을 다하는 큰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논제에 대해, 동료 철학자 가다머 Gadamer는 "내가 하이데거의 '내던져진 상태'를 읽게 되면, 나는 항상 고양이를 생각한다"라고 아주 유머스럽게 해설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를 '고양이'로 만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예레미야처럼 우리는 단지 어렵게 겨우 견딜 수 있는 상황들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우리는 전혀 다치지 않고 현실 속에 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주님의 자녀로 평안하게 살아남아 존재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렘 44, 1 - 14   행 14, 8 - 18  (지난 묵상 링크)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살아 남아 소원대로 돌아와서 살고자 하여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렘 44, 14)

   

   

 배경 음악은 "주님께로 나아가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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