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선택권이 남아 있으니

 

2016년 10월 5일

         

  

    예레미야가 백성들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말했을 때, 그들은 그를 의심했고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대답이 그들의 계획에 맞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애굽으로 자신들 여정을 잡을 결심을 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승인만을 필요로 했다. 이 무슨 믿음이란 말인가?!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결정들을 경건하게 감싸는 외투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 있고 비록 길이 다른 방향으로 갈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믿기를 원하신다.

    백성들의 지도자인 요하난과 아사랴는 바벨론 군대 앞에 두려움을 견딜 수 없었으며 자신들과 전 백성들이 불행에 빠지게 된다. 다른 시대에 기아로 피난 갔던 적이 있는 애굽땅은 피난처가 아니라 함정이 된다. 예레미야는 친구 바룩은 애굽으로 함께 가야만 했지만, 예레미야는 이제 멸망시키는 애굽의 항복을 알려야만 한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일은 독립적이 되게 한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패배 상황에서 미래를 여신다.

     오늘 말씀은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과 불순종 사이에 놓인 선택을 대하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공직이나 책임져야 할 사회적 신분에 있으면, 항상 공직자로서 어쩔 수 없는 일과 직업적 양심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강요를 받게 됩니다. 최근 한국에 있었던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정세균 국회의장의 선택과 고 백남기 님의 주치의 백선화 교수가 사망진단서에 "병사"란 선택이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할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을 두고 어떤 비판과 궤변을 늘어놓을지라도, 분명하게 국가기관이 법적으로 정하고 있는 법적 양심 기준과 한 인간으로서 양심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대부분 '다른 선택권이 없었고 자기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라고 변명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당사자들은 분명 다른 선택이 있었음을 쉽게 간파하게 됩니다. 맡은 직위에서 본인 스스로가 법이 정한 법적 양심과 인간적인 양심을 지킬 수 없다면, 그 자리를 내려놓고 물러나는 것도 마지막 선택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또 하나의 선택이 항상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최후 선택이 대개 쉽지만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며 항상 올바른 양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렘 43, 1 - 13   마 27, 39 - 44  (지난 묵상 링크)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함이러라 (렘 43, 7)

   

   

 배경 음악은 "주님은 산 같아서"입니다.

  

   10 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