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해 고난받고 죽으신

 

2011년 1월 31일 

  

   

    말구유에서 십자가로! 이 무슨 탈바꿈이란 말인가?! 예수님은 모든 권능을 나타내시고도 지극히 낮고 미천하게 되셨고, 모든 것의 창조주이신 분이 스스로 온몸으로 종의 형상을 받아들이셨다.
     예수님은 낮고, 미천하게 늘 거듭해 위협을 받으시며 살며 가르치고 또 치유하셨다. 그리스도는 비폭력적인 사랑과 헌신으로 "하나님 종의 길"을 묵묵히 가셨다. 이런 일들은 결국 예수님께 정반대의 결과, 즉 모욕적인 죽음, 십자가형을 가져왔었다. 우리는 "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4절)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죄가 아니라, 예수님의 어깨 위에다 올렸던 우리들의 모든 죄악, 무성의와 폭력사인 것이다.

    바로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결과로서 "처벌"을 스스로 받아들이셨다. 부활 아침에 "하나님은 구유에 아기 예수와 십자가 상의 청년 예수 가운데서 세상과 친히 화해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주게 된다. 그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모두와 화해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자신감에 가득 찬 현대인들은 "예수가 나를 위해 죽기까지 했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에겐 단지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복음과 하나님의 용서만으로 족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구유와 십자가 상의 하나님을 알아보는지?' 아니면, '각종 죄악, 고통과 죽음 속의 혹독한 인간적인 현실 앞에서 우리는 눈을 감고 마는지?'에 대해 자문해 봅니다. 이러한 인식은 고통스럽지만, 유익하고 자유롭게 합니다. 그래서 본훼퍼 Dietrich Bonhoeffer 목사는 "단지 고난을 당하는 하나님만이 도울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지전능한 힘으로가 아닌, 허약함과 고난을 당하는 힘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사시다 고난당하고 돌아가셨으며,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복된 새로운 한주가 되시길 ....  샬~~~롬

    52,  13 - 53, 5   요이 1- 6  (지난 묵상 링크)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 5) 

   

 

배경 찬송은 기현수의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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